그것은 곧 영화란 감정이자 감각이라는 점, 그리고 영화란 의미작용이자 반응을 요구하는 자극이라는 점이다. 이 둘 모두 연구돼야 하지만, 나는 후자는 전자 없이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즉 먼저 영화의 형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하나의 담론이기 전에, 무엇보다 하나의 감각적 경험이다. 디지털 시대라 할지라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이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바로 내일 영화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통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영화학자 자크 오몽이 바라본 코로나19 시대 영화의 존재론’, 자크 오몽, <씨네21>
인용
토리노의 말, 피로사회

철학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는 앞서 묘사한 궁지를 자기 착취와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집단적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듯 우리가 매일 벌이는 강박적인 멀티태스킹을, 먹는 동안에도 먹이에 몰입하지 못하고 주변의 사태를 살펴야 하는 야생동물의 습성에 비한다. 저자는,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생존에 대한 관심에, 변화를 추동할 힘을 가진 깊은 분노는 쓸데없이 휘발하는 가벼운 짜증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지적한다.
‘피로사회’로부터의 도피, 삶을 주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서의 영화관을 생각하다, 김혜리
편드는 것을 배신하는 것
통념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그는 끊임없이 자기 진영을 떠나 상대 진영으로, 적들의 마음 속으로 넘어가는 끝없는 ‘배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대 안에서 다른 편을 드는 게 아니라 ‘편드는 것’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배신을 통해 적의 입장에 서고 그에 쉽게 공감하며 그와 함께 행동하는 것을 통해 ‘공동성’이 형성된다. 이 공동성이야말로 멀든 가깝든 상이한 개체들 사이에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p113